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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역사강좌

제90차 아나키즘과 공동체 사회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9-13

조회: 2119

추천: 0

제90차 우당역사문화강좌

 

1. 돌아온 도깨비: 아나키즘
2. 아나키즘은 어떻게 태어났나?
3. 아나키즘과 공동체 이상
4. 현대 아타키즘의 변신과 공동체 운동



주 관 : (사)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주 최 : 서울특별시 종로구청

 

[자막]
안녕하십니까? 방영준입니다. 90차 우당 이역사 문화강좌의 주제인 아나키즘과 공동체 사회를 입은 강좌의 주제입니다. 제가 이 강좌를 맡게 된 아마 인연는 아나키즘으로 박사학위를 딴 우리나라에서 첫 박사학위라고 그러네요. 아마 이런 인연으로 해서 제가 이번 강좌를 하게 된 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강의 전체 내용은 제일 처음에는 돌아온 도깨비에서 아나키즘, 아나키즘에 대한 전반적인 특성, 그다음에 아나키즘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나키즘과 공동체의 이상은 어떤 관계가 있느냐, 그다음에 네 번째로 현대 아나키즘의 변신과 공동체 운동은 어떻게 된 것이냐, 라고 하는 주제가 되겠습니다. 지금 화면에 돌아온 도깨비 아나키즘이 이렇게 됐는데 아나키즘의 어떤 대의명사로 저는 도깨비를 사용했는데 도깨비 그림이 지금 빨갛게 나와 있네요. 원래 도깨비 그림은 까맣게 상징되는데 아나키즘의 상징도 브랙프레그라고 해서 까만 깃발을 아나키즘의 이상을 피곤하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강의를 하면서 아나키즘의 상징인 암한 양복을 한번 입어봤습니다. 아나키즘을 왜 도깨비로 상징을 했느냐? 아나키즘은 제우스의 경우인 프로테우스와 굉장히 닮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은 문언에서 하고 있습니다. 프로테우스는 굉장히 변신이 강한 제우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때는 벌레로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호랑이 같은 무서운 동물로도 변하고 어떤 경우는 파리로도 변하는 이런 프로테우스의 특징을 아나키즘과 많이 비교를 합니다. 그 다음에 또한 이 아나키즘은 지하수와 같은 생명력을 가졌다. 이 지하수는 땅속으로 쭉 흐르다가 어떤 지폐문을 뚫고 나와 가지고 호수도 이루고 강도 이루고 어떤 경우는 포포도 이루면서 그러다가 또 지하수로 잠복을 내버립니다. 그러다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다가 또 어떤 시기에 어떤 환경에서 다시 지하수가 분출하는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종잡을 수 없는 도깨비의 어떤 현란한 충과 비유되는 게 다 이런 특징과 관련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한국 아나키즘은 되게 제일 영향력을 많이 미친 크로포트킹 러시아 아나키스트지오 이런 말을 합니다. 아나키즘은 단일한 경쟁이 없다. 아나키즘의 창조자는 민중이다. 민중의 정서와 갈망이 아나키즘을 일으킨다라고 하면서 아나키즘의 어떤 변신과 유형성, 다양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 아나키즘는 오늘날 왜 이렇게 다시 등장하게 됐냐 라고 하는 1930년도부터 1968년까지 아나키즘는 거의 논의가 되지 않아서 아나키즘는 죽은 일원이 아니냐 이런 일부의 논쟁도 사라진 일원이 아니냐 이런 논쟁도 있었지만 아까 말씀드렸지만 아나키즘는 지하소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네요. 1968년에 블란서의 20세기 군대 혁명의 상직이라고 하는 68혁명이 일어납니다. 이 68혁명으로 인해서 20세기 구라파 문명의 정기가 마련되고 그 당시에 확고하게 해겨무니를 장악했던 두골 장군이 그 당시 대통령이었죠. 물론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68혁명입니다. 이 세계 현대 문화사의 아주 큰 기폭제로서 항상 거론되는 것인데 이 68혁명 때 붉은 기빨이 파리의 신혜를 아주 시덧습니다. 그래서 아나키즘는 드디어 다시 지하소에서 땅을 들었고 물 뿜기 시작했다 라고 하는 이런 이제 많은 평가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아나키즘는 왜 다시 등장했느냐? 이거는 제일 첫 번은 막스 이론의 실험 실팝입니다. 막스 이론은 19세기 구라파를 흥들었던 그런 이론인데 이것이 볼셉 있게 현명을 통해 가지고서 하나의 구체적인 정치 체제 를 등장하면서 그 이후에 스타른 체제 든 여러 이 막스 이론의 오히려 전체 주의 국가를 만드는 그다음에 자본주의를 붕괴시킨다고 그러면서 국가 자본주의화 되는 그리고 프로 레타리아 독재의를 하면서 오히려 프로 레타리아 기적 정치가 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막스 이론의 여러 그 실험이 실패했다 이런 데서 첫 번째 요인이고 그다음에는 자본주의의 부정의 문제 어떤 시장 경제의 실패 그 다음에 불평등의 문제 세계 자본주의의 어떤 해겜의 문제 이로 인해 가지고 국가 간의 불평등 문제 이런 것 이 자본주의의 실패가 또한 아나키즘을 등장하게 된 원인이고 그다음에는 종례의 정치적 이슈라고 하는 것은 다 개급론적인 그런 불주하다 프로 레타리아다 무슨 개급이다 이런 개급론적인 입장이 줄을 이루었는데 20세기 21세기에 들으면서 비정치적 비개급론적인 지구의 이슈가 등장합니다 환경 문제라든가 인권 문제라든가 패미니즘 문제라든가 이런 문제들이 등장하면서 종례의 이념의 틀로서는 현지구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라고 하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제3의 대안으로 아나키즘에 대한 그런 관심이 이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아나키즘에 도대체 어떻게 태어났는가 아나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원래 아나키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오래된 용어입니다 플라토는 민주지를 비난하는 용어로 아나키라고 하는 용어로 있었어요 아나키는 선장에 없는 키잡이가 없는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부정이하고 무질서의 용어로 아나키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 됐는데 프랑스의 푸르동이라고 하는 아나키스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아나키스트라는 용어가 없었죠 프랑스의 푸르동이 아나키라고 하는 말을 써 가지고서 자기의 사상을 대변하는 것으로 아나키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그 무질서 속에서 무한 자유로 상징하는 용어로 굉장히 역설적인 용어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다이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데 다다라고 하는 거 어린의 오마리를 상징한 것이 다단대 이 다다이점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에 문화적 전보 합리적이고 경고하게 보이는 그런 문화에 대해서 택크라는 용어로서 다다라고 하는 것을 다다이점이라고 썼는데 프르동이 아나키라고 하는 말을 사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아나키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어떤 모순을 즐기는 그런 아주 해악적인 그런 틀에서 아나키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나키라고 하는 용어에 그 이후에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연합주의라고 불리구요. 패드로 리스트, 상의주의자, 위호들 리스트, 꼼은주의, 공동체주의, 리버터리언 아주 다양하게 쓰여지고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시대 때 무정부주의로 불렸어요 이 무정부주의는 아나키즘을 일본 사람들이 번역을 한 건데 일면에서는 이 아나키즘을 탄합하기 위한 그런 방법으로 무정부주의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해 가지고서 아나키즘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그런 속쌤이 깔렸다 이런 이름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유공동체, 자두공동체, 그다음에 요즘에는 그냥 아나키즘이라고 하는 이런 용으로서 그냥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나키즘의 장시자들이 누구냐는 되게 위대한 성각자들은 다 아나키즘 성량이 있어요 노자, 석가, 예수, 재능 이로 말할 수 없는 성각자들이 거의 아나키즘적 성량을 뛰고 있습니다 이해와 논문 굉장히 많이 있어요 예수님하고 아나키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좀 의심이 갈 수도 있겠지만 퀘이크교어도 우리나라 함석훈 씨가 대표적이며 교회 없는 예수님의 가르침 이런 걸 주장하는 그래서 부타의 사상에도 부타와 아나키즘 관계에서 제 자신도 논문을 쓰고 이렸습니다만 위대한 성각자들이 다 아나키즘의 성량이 있다 근대의 아나키즘은 블란스 흉명과 볼세벳기 흉명 사이에 한 100여 명 간의 세계 사상 사이에 어떤 격동기 이때의 많은 근대 아나키스트들이 등장합니다 여기 이제 영국의 고두인이라든가 프랑스의 푸르동, 독일의 스터르너, 러시아의 마쿠니의 크로포티킨 다양한 아나키트들이 이제 이 시기에 등장을 합니다 근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크로포티킨은 아나키즘의 창시자는 민중이다 그 민중 속에서 아나키즘이 나오는 거다 특별한 개인의 의해 가지고 아나키즘이 나오는 게 아니다 라고 이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에도 오늘은 현대사회에서도 아나키즘의 창시자들은 지금 계속 나오고 있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나키즘은 도대체 아나키즘이 지향하는 정의와는 뭐냐 라고 할 때 저는 그렇게 세 가지로 이렇게 줄여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 처음에는 자연 논적 사회관입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자연이라고 하는 의무의 굉장히 집착하고 있어요 모든 것은 자연에다가 맡겨라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합리적이다 라고 하는 개념 이게 합리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호구적인가 그 한계를 비판을 합니다 그래서 이 푸르동이라고 푸르동은 권위가 아니라 자연섬의가 지배해야 된다 그다음에 크로포티킨의 상어 부주론이라고 하는 것도 이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호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을 강조합니다 그 소로의 웰던 시민 불폭종의 이런 거로 저서로 유명한 헬리소로는 신을 자연과 동일시 하고 있다 그래서 신을 자연으로 이렇게 연결을 시키면서 강조기가 인도하는 대로 맡겨들기 용의가 있다 이러면서 자연을 그렇게 잔향을 합니다 그런데 자연이 구체적으로 무언가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논쟁이죠 그는 자연법 논쟁만큼이나 여러 가지 논의의 폭이 굉장히 깊어지는데 그런 것은 여기서 설명할 게재가 아니고 그다음에 두 번째의 자주 적 개인과 공동체 지향입니다 이 개인의 자유로와 공동체는 아나키즘 정의관의 중요원천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 공동체 사상의 어떤 기본은 전인사상, 플라스 평등, 플라스 박여정신 이 셋을 어떤 공동체 정신의 기본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이 공동체는 단순한 지역 공동체가 아니라 인격적인 친밀도, 정서적 깊이 어떤 시간의 연속적, 도덕적 현실성 이런 것을 하는 사회관계망의 심리적 사회관계의 어떤 특징이 이 공동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주 적 개인과 공동체 지향이 이게 결합하는 양상에 따라서 아나키즘의 다양한 유형이 생깁니다 그래서 자주 적 개인을 좀 더 강조를 하면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아나키즘이 나타나고 공동체를 지향 거기에 비중을 좀 두면은 공동체적 지향의 아나키즘이 나타나고 미국의 아나키즘은 자주 적 개인 쪽에 비중을 두고 구라파의 아나키즘은 공동체에다가 지향하는 이런 성향이 20세기 초반에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이제 각각 공동체의 형태에 따라서 그런 결합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 다음에 권위의 저항 그래서 아나키즘을 분노의 피래침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 표현을 데뷔되에프트라고 하는 세계 정치학계 회장을 하고 정치학의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데뷔되에프트인데 아나키즘을 분노의 피래침이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 시민 불복증 아까도 얘기했지으면은 그 소로를 비롯해서 예 이 저항 그래서 이 3일 운동 같은 것도 일부에서는 아나키즘의 운동이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 아나키즘은 혁명적인 어떤 성격보다도 발란의 성격이 강하다 이거 참 재미나는 표현인데 혁명보다도 발란의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현대학자들 중에서는 아나키즘을 니체 그 다음에 까미우 이런 것과 많이 연결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 권위의 저항에 아주 극단적인 형태가 바쿤인에서 나타나죠 러시아 아나키스대는 바쿤인은 이 파괴의 창조 라고 하는 파괴가 바로 창조다 그래서 아나키즘과 피스톨 권총하고 연결시키는 그래서 아나키즘을 테러리스트 비스 타게 이제 규정도 하지요 그런데 테러리스트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라고 하는 건 굉장히 복잡한 문제에요 브라파 법정에서 테러리스트로 몰린 아나키스터들의 그 은별은 지금까지도 찬란하게 문화게 많이 해자되고 이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의열단은 여기 아나키스트 개통의 아주 아나키스트로가 주류가 아나키스트가 만든 독립단체지의 의열단은 이런 것도 다 분노의 필회칭 같은 것이 좋죠 오늘날 이 건의 저항과 불복종 이런 운동은 코스톤 모조리즘의 운동에 큰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미스일 푸크로 연결되 가지고 우리가 정상이다 합리성이다 라고 하는 개념에 대해서 저항하고 거기다 테크라는 이런 것들로 다 아나키즘 전통과 물잣한 영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지금 1968년 파리의 거리시의 장면이죠 그 이제 까만 기빠들이 보이죠 이게 현대 구라파 문화를 변경시킨 기폭자가 된 이 파리 운동의 사진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이 아나키즘의 이상과 공동체 구현에 대한 주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까는 왜 아나키즘이 다시 등장했느냐 라고 하는 게 우리가 처음 강의해서 시작됐는데 공동체의 관한 관심이 지금 우리 사이에서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그래서 종례는 한 20년 전부터 이 공동차라고 하는 용어가 유행이 됐었는데 지금도 이제 계속 그거가 되고 있죠 왜 이런 이제 관심이 등장됐느냐 이거는 이제 군대와 도시야로 인해 가지고 인간 삶의 양식이 굉장히 피폐화됐다 파뼈화됐다라고 하는 그런 거를 대변하는 거죠 삶의 소의 파편화 이 나후나의 강촌의 살고 싶네요 저도 이제 18분쯤에 하나인데 강촌의 살고 싶네요 이 도시에서 경쟁 속에서 파편화된 먹고 살기 위해서 막 뛰고 이런 게 다 군대와의 도시아의 사물인데 이런데서 자기 고향을 생각하는 것처럼 강촌의 살고 싶네요 이런 것처럼 공동체의 관심이 이제 많이 등장되죠 그래서 이 공동체 그런데 이 공동체가 과거의 향수의 몸으로서는 안 된다 미래기약으로서 어떻게 공동체를 창출해야 될 것이냐 그래서 지금 세계의 가국에서 공동체를 실현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공동체 마을 그래서 안한다 협동마을이라고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여기는 세계 동포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고 리버사이드 공동체라고 하는 건데 평화와 균등 분배를 추구하고 또 뭔두라고 하니 굉장히 많아요 저도 세계에 한 10대 군데 이런 공동체를 직접 이제 방문을 해보고 어떤 공동체는 이 자동차를 적은 거부하고 사는 공동체도 있고 어떤 공동체는 자동차는 받아들이는데 엔진만 걸고 외에 보는 다 이 나무으로 이렇게 장식을 하는 이런 또 공동체도 있고 참 다양합니다 그런데 여하튼 이란 공동체의 관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굉장히 큰 관심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가보면 이 공동체의 주체자들이 다 아낙이짐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이제 공동체라고 하는 것을 이제 우리 학문 쪽으로 어떤 구조적 접근을 해보면 공동체가 도대체 뭐냐 그러면 아마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 처음에는 공위던 가치와 신념이에요 그 구소면들이 생각이 대체적으로 비슷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었던 생각으로 어깨동무를 한다라고 하는데 이게 좀 어 긍정적인 면도 있고 긍정 부정적인 측면돼 있습니다 공위된 가치가 강도가 심하면은 그리고 또 신념이 심하면 전체주의화 될 수 있는 어 이런 이제 에 또 어 성격도 뛰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공동체는 많은 개방성을 뛰고자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다원적 공동체 다원적 공동체의 성격이 굉장히 강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수평적 직접적 다면적인 관계다 우리가 좀 종례회사는 뭐 위에서부터 뭐 부장 과장 개장 이렇게 이렇게 수직적으로 이렇게 내려왔죠 그런데 요즘은 팀쟁이 뭐 이래가지고 수평적인 이고 이런 것도 아나키즘 조직론이라고 해가지고 아나키즘의 조직적 사유가 회사에 침토한 게 그 팀쟁입니다 근데 이 어떤 그 어 이 수평적이고 그다음에 직접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아 그래서 이 다면적인 관계가 강할수록 이 공동체의 성격이 개방적이고 또 결성력이 있다 라고 언제 봤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로 호회성입니다 공동체의 제일 특징을 어 이 호회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타임과 더불어 같이 사는 어떤 삶의 양식 그래서 이 나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너와 나 모든 존재와 같이 우리 사는 사는 어떤 삶의 양식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게 호회성입니다 이게 크로포드키네 상호 부절원에서도 이게 아주 기본적인 핵심을 차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은 이 아나키즘과 공동체 사유 오늘 주지가 그랬죠 이 공 아나키즘의 공동체 이론을 확고하게 제시하고 전개한 사람이 크로포트킴 입니다 지난 우당 기념관에서 크로포트킴 서고 백주년 서고 백주는 기념 행사로 이 크로포트킴을 주제로 해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이 크로포트킴은 참으로 존경하고 싶은 보나트 쇼라고 그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분이 크로포트킴을 성자로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당 이예영 선생님의 크로포트킴과 많이 또 비유가 됩니다 이 크로포트킴은 한 40년간 소련에서 쫓겨나와서 러시아에서 주방돼서 막명생활도 하면서 그런 와중에서도 많은 조서를 올렸습니다 생물학자로서 지질학자로서 많은 채서 렛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게 상호 부조론 참 명점입니다 근대의 과학과 안학기점 그리고 말년의 윤리학을 조서로 하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 윤리학은 인간의 상호 윤리 나 혼자 조서로 없다 모든 존재는 서로 어깨 동무하면서 같이 사는 존재다라고 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정의를 하려고 거의 한 4분의 3 쓰시고 완계를 못하고 안타깝게 돌아가셨습니다 참 성자처럼 생기셨죠? 크로포트킴이 아니에요 사진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 크로포트킴의 서로 돕는다 빵의 징치 그 다음에 현대 과학과 안학기점의 크로포트킴의 조서를 여기다가 소개를 했습니다 크로포트킴은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서 저런 책을 쓴 분이 아니에요 이 분은 시베리아와 풍만주를 돌아다니면서 지지락자 생물학제로 엄청나게 연구를 했어요 우리가 요즘 게임이라고 하는 소설로 불난서 작가가 힌트도 치고 그랬지만 크로포트킴은 이미 게임이 사이가 얼마나 상호 부조의 사인가 그리고 식물의 세계에도 자기가 혼자서 잘난책하는 세계가 아니에요 서로 다 돕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호수적인 만인의 유한, 만인의 투쟁이라든가 다인의 어떤 진아론, 적자생존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그 허구성을 파헤치면서 이 공동체 정신, 상호 부조론의 정신을 안학기점의 주사상으로 이렇게 연결시킨 분이 바로 크로포트킴입니다 우리 우당이 예영 선생님과 자주 비교되고 있는 분이죠 그래서 이 크로포트킴이 사망했을 때 그때 러시아에서는 볼셉에 있기 시작해서 렌인이 집권하고 있을 때에요 렌인이 집권하고 있을 때인데 하드 크로포트킴의 영향력이 쎄서 이 큰 장례, 국장 비썰어 타게 뭐, 1년 됐는데 검은 깃발이 그 모스코바 거리에 이렇게 휩쓸었다 그래서 모스코바의 마지막 검은 깃발 이런 소재로 세계의 큰 감동과 화제를 남겨주는 그런 분입니다 그 다음에 현대 안학기점이 도대체 어떻게 변신되고 구체적으로 공동체 운동이 어떻게 정계되고 있느냐 이런 생각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현대 안학기점이 변신과 어떻게 변신과 분화가 됐냐 그런데 제 주변에서 자기가 아나키스트로 주장한 사람이 많아요 그건 놀랍습니다 제가 아나키즘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왜 이런 걸 쓰느냐 아나키즘은 불온사상 또 공산주의사상 비슷하게 이렇게 하고 그때 뭐 무정부주인이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많이 비판을 하는데 그렇게 새관경을 봐서 제가 불편할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아나키스트 하면 아주 낭만적이고 아주 진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주 이런 사람으로 대후바다예요 그래서 나 주변에 아주 나는 아나키스트 해야 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오늘날 아나키즘은 정치적 영역에서보다는 우리 일반 삶의 양식 속에서 아나키즘이 다양하게 나타나가 있어요 특히 예술, 문화 이쪽에서는 거의 아나키즘이 줄이다 이렇게 생각하네요 그래서 종례의 정치적 이념이나 정치적 제도로서의 아나키즘이 아니라 외유플라이프, 삶의 양식, 살아 나가는 어떤 모습으로서 아나키즘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까도 우리나라 회사의 팀제 이런 것도 아나키즘 조직론이라는 게 일찍이 회사는 팀제로 운영이 되고 수평적 조직으로 운영이 돼야 한다 이런 것들이 일찍의 아나키즘 조직론에서는 많이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지금 오늘날 회사 운영에 있었어도 아나키즘적인 그런 사유의 틀이 그래서 오늘 아나키즘을 이렇게 생각하면서 노인과 바다가 생각이 납니다 해밍의 노인과 바다에서 밖에 나가서 큰 고기를 잡아왔죠 노인이 아나키즘이라고 하는 큰 고기를 바다에서 이제 뭘 가서 잡아왔는데 그걸 이제 끌고 포구에 닿을 때는 다 뜯겨가지고서 뼈만 앙상하게 남았어요 뼈만 앙상해 아나키즘이라고 하는 걸 여러 영역에서 다 가지고 왔죠 그러면서 당연히 아나키스트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름으로도 표현하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 아나키즘의 시대가 돌이했다라고 이런 본공견화하게 특히 물란서 그다음에 스페인 같은 데에는 아나키즘이 유명한 팝 가수처럼 그렇게 운이 될 정도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나키, 현대 아나키즘의 중요 활동 영역을 한 번 4가지 정도로 이렇게 살펴보면 아까 지금까지도 공동체 이야기를 했지만 자주 관리와 공동체 온도 여기서 지금 대표적으로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라고 하는 걸 제가 써놨는데 저는 책 이름입니다. 몬드라곤은 스페인의 있는 지역이에요 그 해밍회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 주인공들이 다 아나키스트들입니다 그 괴류쿠퍼가 잉그릇뜨 버그마니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 지역이 몬드라곤이에요 그런데 그 몬드라곤에서 공동체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거는 단순한 시골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전자회사예요 그래서 스페인의 전자 물품을 한 때 3분의 1 정도 가까이 공구를 할 정도로 그런데 공동체적으로 운영을 합니다 사장도 다 뽑아요 아주 그 수평적인 모든 위계관리라고 하는 것이 수평적이고 직접적이고 다면적이고 아까 공동체 특징 세 가지를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런 곳이 몬드라곤이에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그래서 저도 몬드라곤에 배워보려고 갔습니다만 아주 긴 휴가기간이에요 휴가기간이 길어요 그래서 직접 공장 겨낙을 못하고 그냥 주변을 얻으려고 그러다가 이렇게 온 경험이 있습니다 두 번째 참여 민주주의 및 직접 민주주의 운동입니다 이 개급적인 트레스를 벗어나가지고 하나의 신사의 운동으로서 민주주의 운동을 전개합니다 그래서 투표용지에 의한 정치의 호구성 투표용지에 의한 정치의 호구성을 지적을 하면서 다양한 직접 참여 방법을 이야기하고 인터넷 등 전자민주주의의 추체들이 요즘 다 아나키스에 드립니다 그다음에 정당없는 정치르시도 합니다 정당없는 정치 그래서 잠깐 만들었다가 딱 해체하고 어떤 이슈에 대해서 그걸 이슈를 해서 쫙 모였다가 그걸 성취한다면 딱 해체하고 이런 것이 댄마크, 스웨덴, 스페인의 이런 운동이 아주 강합니다 스웨덴은 거기에 폐선 위에 배위에서 버린 배위에다가 거기서 모여가지고서 정치 운동을 하는데 의석을 제3당의 의석도 얻었다라고 하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렇게 이렇게 건물이 아니라 버린 배 안에서 정치를 하는 그래서 종류의 어떤 정치 패턴하고는 전혀 다르 그다음에 우리 세 번째가 환경 문제 생태 아나키즘이죠 이건 참 아나키즘의 아주 전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에코 아나키즘이라고 하는 이건 우리가 아까 아나키즘의 특징 중에서 자연 논적 사회관이라고 하는 거 있죠 모든 걸 자연해 신과 자연을 동일시 하는 그래서 이란 자연 논적인 어떤 사회관이 에코 아나키즘의 아주 기본적인 틀로써 그래서 오늘날 현대 환경 문제의 성과이자 채찍자다 아나키스트는 환경 문제의 선동화와 채찍자다 그린피스의 구성원들이 거의 아나키스로적인 사유를 가지고 있는 왜냐하면 녹색 정치라고 해서 종류의 정치적 패턴을 떠나가지고서 생태유예학과 연결시키는 이거는 오늘날 지구기후의 문제와 연결시켜 볼 때 참으로 성각자적인 생각을 하지 않느냐 지금 전혀 지금 불타고 있고 그리고 물에 다 익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구라파, 호주, 미국 지금 홍수나 가지고 그리고 중국 이런 이런 이런 이런 것들에 대한 아나키즘의 일찍이 여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운동을 전개했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 자유교육과 아나키즘이라고 하는데 아나키즘은 국가주의 공교육에 대해서 굉장히 의심을 많이 합니다. 이게 그래서 학교는 죽었다. 이게 프레일이, 군맨, 일리 이런 현대 교육에 많은 문제점을 던진 이런 사람들이 다 그 아나키스트 계열입니다. 그래서 자유학교의 지향이다라고 오늘날 우리나라 학볼 사회 아닙니까 그래서 이 학볼이라고 하는 것이 이게 사회의 계층을 고착화시키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그래서 이 교육을 어떻게 대살리느냐 계층을 고착화시키고 불평등을 조작하는 이러한 교육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이런 것들을 이미 아나키즘의 일찍이 제가 이 아나키스도 초기조사, 한 80년 전에 조사할 때 이런 것들이 아주 적은하게 나와 있어요. 얼마나 성각자적인 그런 역할을 했느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라고 하는 몬드라곤을 책, 그 책, 그런데 저희 갔었죠. 그냥 부질 못하고 휴가기간이 길어가지고 그래서 그냥 보고 온 데가 바로 몬드라곤인데 책 표지입니다. 그러면 공동체 사회의 구형 과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제 아까 그 나우나의 강촌에 살고 싶네 그래서 공동체를 자꾸 과거의 향수적인 이런 것을 떠나가지고 미래 기획으로 미래에 어떻게 이런 산업학, 도시화된 이런 사회 속에서 어떻게 공동체를 구현하느냐. 그래서 요즘 도시공동체 운동 정계하는 그런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이것이 아주 미래 기획으로서 공동체 하면 과거의 기적이었는데 미래 기획으로서 공동체를 어떻게 구현하느냐. 그래서 하나는 개인윤리적인 차원, 사회윤리적인 차원의 조화 이랬는데 개인윤리적인 일정에 자기의 의지, 자유의지, 도독심 이런 것이고 사회의 위는 사회 구조와 제도를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만드느냐. 이런 개인의 어떤 공동체적 심성, 상생윤리적인 도독관을 정립을 시키고 이것만 되는 게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제도를 어떻게 정의로운 공동체로 만들 것이냐. 이런 두 가지 조화가 돼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고 두 번째 상생적 윤리관의 정립이죠. 요즘 맥헨타이어라고 나와 있죠. 우리 정의란 모신가라고 하는 책을 지은 사람이에요. 정의란 모신가가 우리나라에서 엄청 팔렸어요. 저도 하나 사 가지고 이렇게 저도 정의론을 용구하는 사람인데 끝까지 일지를 못했어요. 책 분량도 방대하고 그렇게 많이 팔렸는데 과연 얼마나 읽었느냐라고 여러 가지 우수계 소리도 나옵니다만 그 베스트 셀라가 된 맥헨타이어라는 정의란 모신가가 있는데 이 맥헨타이어로 정의의 윤리는 소위 개인주의윤리 투상적 관여음의 개인주의윤리에 대해서 비판을 하면서 공동체 윤리라고 하는 것을 아주 추장을 합니다. 공동체 윤리를. 그러면서 이 공유지의 비극을 극복을 해야 된대요. 공유지는 그냥 주인 없는 땅에서 농사 짓는 거죠. 주인 없는 땅에서 그냥 서로 농사를 지으면 거기서 그 땅을 서로 협덕에서 비료도 주고 잘 갖고 가야 되는데 그냥 이건 내 땅도 아니고 공동의 땅이다 그러면 여기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서 오히려 비극이 생기는 그래서 공유지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상생적인 윤리관을 어떻게 극복을 하느냐. 그래서 이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어떻게 회복을 하느냐. 이것이 공동체 윤리의 아주 기본 맥퀸타이어가 주장하는 건데 이미 저 아나키스터들 아까 말했죠. 프로포트킨 선생님께서 이미 다 이야기하는 것을 지금 또 맥퀸타이어가 이야기하면서 아나키쯤의 어떤 사상을 이어 받고 있다 라고 볼 수가 있죠. 그다음에 이 자기조직화 이게 이제 몇 마지막이 되겠네요. 이게 셀프 보관의 제이쉬 언니를 이게 현대 물리학과 시스템 세월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자유롭고 자율적인 구조 속에서 여기서 조직이 생기고 질서가 규연되는 거예요. 그래서 조직이라고 하는 어떤 질서라고 하는 것은 어떤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공동체에서 같이 살면서 자주 사회에 자치 사회를 살면서 여기서 스스로가 조직화해 가지고 여기서 자발적인 질서가 규연되는. 이것이 최고의 이 정도의 수준이 진짜 진정한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조직하고 그리고 자발적인 질서를 구현하는 하나 이런 그래서 이렇게 현대 이제 공동체의 어떤 구체적인 과제로서 이렇게 세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여기 산청관디학교 사진이 나오는 애예요. 산청관디학을 굉장히 오래됐습니다. 종례의 어떤 교육적인 테라다임을 없애버리고 저렇게 신나게 놀고 그러면서도 성적이 괜찮아요. 그래서 아주 행복도가 높은. 그래서 아나키즘 공동체, 교육공동체 하나의 틀로서 우리나라의 산청관디학교. 우리나라에 저런데 지금 많이 있습니다. 제가 한 17건대에 송민산에도 가보고 뭐고 그래서 이 도시 생활에서 찌들려 나와 가지고 와서 저런 공동체를 형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제 뭐 이게 아나키즘인지 뭔지 몰라요. 하다 보면 이야기를 하면 아이고 아나키즘이 무슨 일인 걸 그거 했었군요. 뭔지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나키즘은 인간 삶의 어떤 양식과 방법에 다른 그 상상력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아나키스트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찾아가는 어떤 기름는 나간 애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아나키즘에 대해서 오해를 가지고 계셨던 분이나 이렇게 아리스웅하게 생각하는 이런 분들에게 조금은 그 줄잡이 역할이 좀 됐으면 하는 그런 역할입니다. 우리가 아나키즘을 사랑하면 우리가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강좌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