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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역사강좌

제91회 국가, 정부, 의회 세워 독립운동 펼친 나라, 또 있을까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10-14

조회: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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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네 안녕하십니까. 저 안동대학교 사과의 명예 교수로 있는 김희곤입니다. 오늘 이 강의 주제를 국가정부의회를 세워서 독립운동을 펼친 나라 또 있을까. 조금은 도전적이고 이런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화면에 이 건물은 아직도 이제 곧 완공될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이제 국립이어서 제목이 국립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의 그림입니다. 이 조감도가 곧 이제 현실로 이제 우리들 눈앞에 다가올 텐데요. 제가 여기에서 국가와 정부와 의회 전 세계에서 수많은 나라들이 독립운동을 펼친 한데 그런 독립운동을 펼친 나라 중에 국가와 정부의회를 세워서 독립운동을 펼친 나라가 과연 또 있을까. 이러한 제목을 붙이고 또 더 발적으로 제일 아래쪽에는 대한민국 103년 이라고 해서 연호를 써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 얘기가 진행되면 이제 보시게 될 겁니다. 독립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죠. 아시는 것처럼 침략하는 제국주의 국가가 있고 그 침략 제국주의 국가에 침략을 받아서 전 세계의 모든 식민지가 된 나라들은 다 저항을 하죠. 그 식민지를 즐기는 나라가 없다 말이죠. 그러면 전 세계에서 독립운동을 한 나라는 얼마쯤 될까요. 사실 그거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걸로 침략 제국주의 국가가 얼마나 되려냐 그건 잘할 수 있습니다. 프로토칼스페인 시대에서 네덜란드 시대 영국 시대 그러면 프랑스가 따라 나서죠. 후발국가인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등의 이 오스트리아 이런 제국주의 국가들이 따라 나오잖아요. 그 제국주의 국가의 원래 식민지 였던 미국 같은 나라가 독립하는 이후에 또 제국주의 국가에 대해에 참여하게 되고 그리고 그 미국 이 문을 열어서 문호가 개방된 일본 이 어찌 보면 막내로서 참가하게 되는데 제국주의 국가라는 것은 이렇게 열 스녹의 정도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겠죠. 그럼 나머지는 대부분 침략을 받아서 독립운동을 펼쳤단 말이죠. 그 독립운동을 펼친 나라가 다들 어떤 목표가 있어요 공통 목표 그게 뭐냐면 자주 독립국가라고 하는 그 그러니까 당연히 자주 독립국가 를 만들어야 되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근대국가 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근대국가 그러니까 이렇게 침략 제국주의 국가에 이겨서 독립을 해서 어쨌든 독립할 나라가 중세 군주 국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근대 민주 국가로 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는 제 세계 독립운동의 보편적인 현상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그 전 세계 식민지 해방운동 독립운동 속에 어느 정도 의 성격을 갖고 있을까 보시면 한국은 제국주의 국가 침략 국가에 바로 옆에는 인접 국가입니다. 인접 국가에 그것도 직접 통치를 받습니다. 인도 같은 경우는 영국이라고 하는 멀리 있는 원격지 있는 나라의 통치를 받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또 직접 통치라기보다는 일본이 우리를 통치하는 것보다는 약간의 간접통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고 하는 저 남쪽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고 하는 것과 침략한 영국을 비교해 보면 그 두 국가의 문화격차가 엄청나게 크잖아요. 그럼 쉽게 식민지가 돼요. 그런데 침략한 일본 보다 우리 침략당한 한국이 문화적으로 더 위에 있었다고 자부해온 사람들이 우리 한국인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인접 국가에 직접 통치라고 하는 최악의 통치 조건과 침략국가 에 대응하는 이 식민지로서 우리가 갖고 있는 저항성이 가장 강한. 그래서 전 세계에서 인접 국가의 통치를 받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전 세계에서 식민지가 많아 가지고 해가 지지 않는다는 나라가 영국이잖아요. 그 영국 바로 곁에 있는 아이랜드 가 바로 그 영국의 식민지 상과를 하지 않습니까. 침략을 받고 또 준식민지가 되고 반식민지가 되고 식민지가 되고 그것이 800년이 넘어요. 그러니까 아주 거기도 어려운 악조건이죠. 그런 속에서 투정성은 최강이다. 아이랜드의 독립운동이나 한국의 독립운동을 보면 전 세계 식민지 해방운동. 식민지 해방운동이란 말도 쓰고 독립운동이란 말도 쓰는데 거기에서 우리 한국의 독립운동이 투정성이 최강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미리 드리고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속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디 좀 속해 있는가. 1919년 3일운동이 있었죠. 다 아시는 것처럼 3일운동이라는 것이 전제했습니다. 이 3일운동 이전의 독립운동이 오이병이 처음 일어나던 때부터 25년입니다. 그리고 3일운동 때부터 우리가 해방 될 때까지가 26년이에요. 쉽게 약해서 50년이라고 합시다. 우리들의 독립운동을 50년으로 본다면 그 이전의 것을 전반기 그 뒤에 것을 호관기라고 정리를 해보죠. 이렇게 전반기에는 오이병전쟁 이라고 하는 아주 강한 저항운동이 유림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이 오이병을 추구했던 분들은 대부분 군주주의 국가를 꿈꾸른 거예요. 우리 임금이 황제가 주권을 가진 거죠. 하지만 세양의 과학 문명을 받아들여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보자고 하는 애국 개목운동가들은 그렇게 강하게 나아가 돼 공화주의 국가 를 만들려고 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수와 진보라고 하는 두 개의 계열로 나뉘게 돼요. 이 1910년에 나라 망할 때도 보수와 진보가 손을 잡지 못하고 등 돌린 상태에서 나라가 망하는 거죠. 그리고 1915년에 와서 광복회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처음으로 오이병 계열과 개목운동 계열이 합류 하나. 즉 독립운동사 전반기에도 보수 진보가 있고 그 보수 진보가 나라 이런 뒤에 5년이나 지나서 합류를 하더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3.1운동 때 우리나라의 사회주의가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후반기에도 또 다시 보수 진보로 나뉘어져요. 보수 진보라고 하니까 요즘 이야기하고 비슷한 것 같죠. 그래서 이때도 독립운동이 두 개로 나누어지게 되면 이것을 통합하는 운동이 1926년에 60만서 운동, 신간에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죠. 나뉘면 통합을 시도하더라. 그래서 그 전에 25년의 독립운동을 전반기라고 하고 25년 이후에 3.1운동 이후에 독립운동을 후반기를 이제 독립운동 후반기라고 할 때 대한민국 임시정본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3.1운동으로 탄생하게 되는 겁니다. 3.1운동으로. 어떻게 우리가 5등은 자의 우리들은 이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느라 독립국을 선언했지요. 그럼 독립국을 선언했으니까 독립국 어디 만들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만들어진 게 대한민국 임시정보입니다. 여기에서 하나 집고 넘어야 될 것은 대한민국하고 임시정보는 다르다는 거죠. 대한민국은 국가 이름이고 지금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 정부라고 할 때 대한민국은 국가고 행정부가 있지요. 또 대한민국은 국회가 있습니다. 그죠.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국가 이름이고 그것을 이끌어 나가는 정부와 국회 와 사법보가 있지 않아요. 그죠처럼 똑같이 대한민국은 국가 이름이고 그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정부 국회 사법부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상의임정 상의임정 이렇게 부르는 바람에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사실 놓치고 살아난 사람이 많았어요. 국가와 정부가 잘 구비가 안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3.1운동 때 우리가 독립국 인물 전 세계에 선언 선포하고서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 선생님이 가서 우리를 독립식가 달라고 요구를 하지요. 그럴 때 상하의에 모인 우리 독립운동가 대표들이 4월 11일에 그렇게 1919년 4월 11일 밤에 회의를 거쳐서 11일 아침 10시에 모든 걸 결정 하게 되는데 그 결정하는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원장이에요. 임시원장은 임시 헌법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9월달 되면 임시 헌법으로 이름을 바꿔요. 제 1절을 볼까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이것은 사실 지금 현재 헌법하고 똑같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 이때 대한민국은 국가 이름입니다. 이 대한민국은 국호. 국호라는 것이죠. 민주공화제이라는 것이죠. 이건 정치 체제를 말하는 것이죠. 우리 역사가 5000년이든 만년이든 간에 우리 한국의 역사에 최초의 민주공화제 국가가 만들어진 거죠.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 현재 국가라고 하는 것이 국토와 주권과 그다음에 국민이 다 갖고 있어야 되는데 이것을 뺏긴 상태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돼요. 그래서 나라밭에서 임시정부라고 하는 행정부와 임시의정원이라는 이법보고가 이 대한민국을 운영을 하다가 나 나중에 국토를 회복하게 되면 1년 안에 뭐를 서집한다 국회를 서집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국토를 회복하게 되면 임시의정원은 국회가 된다는 거죠. 그럼 임시정부는 임시만 떼고 정부가 되는 거예요. 대한민국은 국가 이름이거든요. 그리고 여기에 뒤에 밑에 나오는 대한민국 원년하는 것은 연호입니다. 우리가 전통 시대의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면서 우리들의 독자적인 연호를 대부분 사용하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도로면서 이제 연호를 쓰면서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쓰게 되는 겁니다. 용의왕재도 있었고 광무왕재도 있었는데 그 왕재들이 주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주권을 뺏겼기 때문에 그 주권을 국민이 가지는 거고 그 국민이 지금 외세에 짓발패이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은 그 주권을 대차자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 이것을 만들어 간 사람들이 떴슈였거든요. 그래서 정리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있는데 민주공화재해를 선언한 최초의 헌법이 1919년 4월 11일 날 나왔는데 그날이 우리는 대한민국 원년 4월 11일이라 하더라. 그리고 국토를 회복하고 나면 국내로 들어가게 되면 임시 정부는 정부가 되고 임시의 정원은 국회가 된다. 지금 그대로 온 거죠. 그대로 왔습니다. 여기에서 또 주목할 만한 것은 제3조에 남녀 빈부의 차가 없고 일체 평등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남녀 평등을 명문화한 최초의 헌법이 바로 이때입니다. 대한민국 원년 이것은 영국의 여성들이 완전한 참정군을 가지는 것이 1928년이거든요. 우리는 임시의 정원의 여성의원 요중 말하면 국회의원이 등장하는 거죠 . 그러니까 굉장히 빠릅니다. 그래서 흔히 말할 때 이 혁명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평가를 하느냐 3.1일 독립운동에서 독립국으로 선언을 했는데 그 독립국과 이름을 뭐라고 할래요 대한민국으로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권립하고 나만 해외에서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이 운영해 나가다가 국토를 회복하면 체제를 이렇게 바꾼다. 대한 제국이라는 나라 이름에서 제국을 떼고 민의 주권을 가지는 대한민국 으로 온다. 대한으로 무너졌지만 대안을 이뤘지만 이제는 되살린 것은 황제가 주권 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민의 주권 을 가진다. 군주사회에서 민주사회로 오는 겁니다. 대양에서 우리가 시민혁명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요. 시민혁명. 이 시민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국민이 참정권을 가지고 있는 시대. 그걸 시민사회 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유럽에서 자유민들이 참정권을 달라고 다 일어난 혁명을 시민혁명이라고 하잖아요. 지금 최근에 와서 우리가 3.1 운동을 혁명이라고 부르자고 하는 이유가 최초의 시민사회 즉 모든 국민이 참정권을 가지는 민주사회를 만들어낸 게 언젠가 바로 3.1 운동이고 3.1 운동의 결실로 대한민국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말을 써진 것이죠. 그러면 그렇게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디에 존재했는가. 지금 이 동노에 따라서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에 들어올 때까지 27년 동안 존재를 합니다. 그 27년의 딱 절반을 27년의 절반되는 13년을 상하이에서 보냅니다. 상하이에서 절반을 보내고 그다음에 난진 근처로 한 32년에 가서 38년 나갈 때까지 5년 정도를 보내고 나머지 이 넓은 공간을 이동해 가면서 8년을 보내는 것이죠. 그러니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에서 활약했던 정부가 소지했던 것은 27년의 역사 중에서 반은 상하에 그다음 5년 8년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27년 동안의 펼치였던 이야기들을 제가 큰 제목으로 묶어보았습니다. 임시정부가 출범하면 곧바로 독립전쟁을 추진합니다. 독립전쟁을 하자면 군대가 예세 되죠. 그래서 사관학교를 만듭니다. 무관학교라고 해서 그런데 1기생 2기생을 배출한 비에 사람과 돈이 계속 공급이 되지 않으니까 이제 일단 중단되게 되고요. 그래서 독립전쟁을 계속 하자면 만주에 있는 독립군을 정부 아래로 넣어야겠다. 그래서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서로군 정선이 북농군 정선이 하는 것은 이 정부가 독립전쟁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북농군 정서가 중심이 되어서 나갔던 그 봉호동전투청살리전투 우리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서로군 정서 또 참가하고 그 세력들이 또 북방으로 옮겨가고. 그렇게 펼친 것이 임시정부와 손잡고 또는 임시정부 산하에서 움직였단 말이죠. 임시정부 스스로도 한국광복군총령이라는 부대를 운영하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나중에 충칭에 가서 남의 나라에서 군대를 운영한다는 게 그렇게 자유롭지 못합니다. 만주에서 1921년까지 그렇게 잘 존재하지만 30년 일본이 31년 도에 만주를 침공하게 되면 만주에서 우리들의 전투력은 그렇게 강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상당수가 중국 본토를 이정해 가고 임시정부에서 그분들을 초대 했다가 그거를 바탕으로 해서 한국광복군을 충칭에 가서 1940년에 만들 를 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이더메의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할 때 대일 선전포고라고 해서 선전을 전쟁을 선포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이제 독립전쟁역 하나인 것이고 또 하나 외교의 이야기는 우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게 3일 독립 선언에서 독립 고임을 선언했는데 그 뜻을 빨리 강화해 이해 가서 우리를 독립을 시켜달라고 요구한 거잖아요. 그 외교활동 과정에서 정부가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1차 세계대전 때 외교활동이 굉장히 강하고요. 또 2차 세계대전 때도 또 강합니다. 그러다가 뒤에 사진이 이제 나오겠습니다만 이 활동이 얼마나 잘 먹혀 들었을까 또는 우리들의 독립 운동이 그냥 있었던 게 아니니까 그것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 드러나냐면 2차 세계대전이 한참 진행되고 있던 그때 카이로의 모인 미국, 영국, 중국의 수반이 이번 전쟁이 끝나면 이렇게 이렇게 정리합시다 하고서 넣은 내용 중에 한국을 독립시킨다고 하는 것을 넣게 되거든요. 거기에 한국 위에 다른 날 없어요. 이번 전쟁이 끝나면 한국은 독립시킨다. 그렇게 명문화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독립전쟁과 외교활동이 있어서 가능한 거거든요. 그다음에 우리가 흔히 연통제 교통국 이런 이야기를 쓰는데 이건 다름이 우리가 텔레비전에 지금도 제가 손에 들고 있는 것처럼 리모트 컨트롤 를 한단 말이죠. 원격제요. 비록 정부는 다른 막명지에 있지만 국내에 요즘 표현을 하면 도지사든 군수든 면장이든 직접 임명을 해서 행정명령을 전달하고 세금을 거두어서 임시정부가 운영되는 그런 노력을 국내 행정을 장악하려고 했다는 이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통제 연통부라고 해서 분수 면장을 만들어서 연결 시키고 또 그 라인을 연결할 수 있는 교통국 체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독립전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국내에서 일어나는 비밀 군사 조직 도 이세합니다. 주비단 또 그러한 의열투쟁기구인 의용단 이런 것이 다 임시정부 조직입니다. 국내에 행정을 장악하고 독립전쟁 을 꿈꾸고 실질적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이죠. 그다음 또 하나는 의열투쟁이라고 해요. 의열투쟁은 우리가 이봉창 의거 윤봉길 의거로 잘 알고 있고 의열단 의거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의열투쟁을 9.11 캐롯처럼 그렇게 평가를 하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그건 정말 역사를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한국의 의열투쟁은 한 마디로 하면 침략을 대바다 친 반 침략전 입니다. 이건 뒤에 다시 설명을 하겠습니다. 또 27년 후에 독립운동 속에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이야기에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 한국의 독립운동 사가 3.11 운동 이전에 전반기 와 후반기가 있는데 모두 다 보수 계열도 있고 진보도 있었고 또 후반기에도 보수 진보가 있다 했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는 우리 독립운동 사의 후반기인데 그 후반기 에 도 보수 진보가 다 따로 있어요. 그런데 보수 진보 하면 우리 등돌리기 싸운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통합을 달성했다. 통합을 달성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나중에 들어올 때 좌우 합작 상태에서 들어옵니다. 우리가 분단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사적인 교분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임시정부의 역사 이거든요.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재미있는 화면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화면을 봐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의열투쟁은 흔히 요즘 말해 지고 있는 테러하고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본 역을 그렇게 하더라도 말이죠. 어떻게 다르냐 하면 한 번도 관계 없는 민간인을 공격하거나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럼 뭘 하느냐.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고 상해를 침략하고 이렇게 침략 전쟁을 벌일 때 우리가 그것을 대바다 쳐서 침략 책임자 최고 책임자와 일본 왕이겠죠. 그러니까 최고의 책임자 또는 저순청도, 관동군 사령관 또 국내에 동량책식 출식 회사 식사원회. 이걸 정리하자면 침략 책임자와 침략 통치기구 그것을 적집계로 타격하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대단한 규모의 군대를 가지고 있어서 일본과 전면전을 벌일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죠. 하여튼 그렇게 대규모 전면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됐으면 나라를 잃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나라를 잃은 뒤에 우리들이 목표했던 것은 일본은 침략 전쟁 을 계속 확대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준비를 해뒀다가 연합군에 가담해서 일본과 싸워서 우리의 목수로 독립을 되찾는다 이거 거든요. 그래서 군대가 금방 조직이 안 되고 힘드니까 소수의 정해병력으로 타격을 가하는 반침략전 침략을 대바다 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한인의 애국단 같은 경우는 만철 총재를 저격한다거나 관동 군 사령관 만철총재 저격 시도하던 팀이 가다가 대련해서 잡혔죠. 조선종독 처단팀이 있었고요. 조선중에서 윤 봉기로 이거도 존재하는 것이죠. 이 상해를 침궁해서 이겼다고 성전 했다고 무차별로 중국인 민간인 지역을 휩쓸어놓은 것은 이겼다고 성견 기념식을 하던 그날 일본의 왕의 생일날 그 성전 기념식을 하는 단상의 폭탄을 던져서 처단을 했던 것이죠. 우리들의 의열투정 임시정부의 의열투정은 결코 민간인들에 대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 부도득한 그런 태로와는 다르다 그런 것을 또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일본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에 대하여 선전을 즉 전쟁 을 선포한 겁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일본이 항복하고서도 끝내 한국을 연합군에 치보 늦는데 끝내 반대해서 우리가 저약 참가자 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우리가 분명한 것은 일본에게 선전 을 포구했다는 사실이고 독일 분에게도 선전을 포구했죠. 이래 이 사진은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좌파와 우파와 좌파의 통일을 만들은 좌합자 을 이룬 통합정부라고 말씀을 드렸던 겁니다. 그처럼 여기에서 보면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에 의정원이라고 되어 있죠. 의정원에서 의원들이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에는 김구 라고 하는 우리 주석이 있기도 하고 또 제일 오른쪽의 눈매가 하줌매서운 최근에 이 분을 포상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하고 이하의 영웅을 낳던 김움봉입니다. 이 좌파의 대표죠. 또 아나키스트 유림이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무정부주의자라고 보통 이야기 하는데 이런 좌파 우파가 통합한 정부를 꾸려 나갔다는 것이죠. 여기서 중간 두 번째 줄에 한 분 볼까요. 우리 여성 의원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좌우 합작일 뿐만 아니라 굉장히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언젠가 한번 방송해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참전권을 가진 것은 1948 년입니다. 이렇게 표현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임시 의정원 의원으로 등장한 것은 이미 1920 상해 시대에요. 상해 시대. 김마리아 여사부터 시작해서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들의 역사가 굉장히 진보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여기 이 사진은 한국 광복군의 모습입니다. 저 충충이라는 곳에서 한국 광복군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우리 국민들은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만 만주에도 독립군이 존재했다 러시아에도 존재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런데 그 군대라는 것을 남의 나라에서 만든 다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베트남 전쟁 때 멸망했던 원람 베트남 군대가 지금 승리해서 만들어진 베트남 북부 베트남 중심이 아니라 원람의 폐망 이후에 그 원람 군대 가 우리나라에 와서 지리산 쪽이나 아니면 경삼도 태백삼맥 소개나 일계대대나 이렇게 병력을 갖고 유지하겠다 라고 하면 우리 정부 가 들어주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단 말이죠. 그래서 남의 나라에서 우리 군대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나라 그 정부 에 도움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의 영역에 들어가는 우리 독립군은 러시아의 간섭 을 받게 되어 있고 또 도움도 받아야 합니다. 먹고 살아야 되고 우장도 해야 되고 그와 마찬가지로 충칭에 가 있는 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장제 수가 있거든 중국 국민당 정부 에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야만 운영을 할 수 있단 말이죠. 또 그들은 항일전쟁을 벌이는데 우리가 활용 가치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각 전방기지에 나가서 군사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하다 거든요. 어쨌든 그래서 광복군을 만들 때 이 날 지금 이 사진은 충칭의 새벽에 자링하우스라고 하는 호텔 인데 이 가까지른 절벽에 붙어 있는 호텔입니다. 일본군의 공섭이 막 시작되기 전에 새벽 안기가 자역한 시각에 자링 하우스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거기에 우리 정부 여인들도 있고 중국 국민당 정부의 여인들도 참석을 하고 사진을 찍고 여기에는 여군도 존재하죠. 여기 작은 여군은 지청천 장군 총사령관 총사령관의 이 총사령관의 따님 이죠. 그렇게 해서 여기에서 광복군을 만들고 그다음에 전방으로 가서 전문가 운영이 요즘 시안 시안으로 전방 부대를 내보내고 총사령불도 이동 해가서 일본군과 맞서고 있는 중국 부대가 있으면 그 전선을 넘어서서 사병들에게 우리 한적 사병 우리 증병으로 끌려온 한적 사병이든 학병 이든 이 한국인들 또는 후방에 전선 후방을 따라다니고 있는 한국 청년들 장사라 위해서 이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포습을 해서 어느 날 본 게 100명 이런 식으로 해서 이들을 장교 교육을 시키면서 한국 광복군 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그날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가 만들어지게 되면 거기에는 많은 중국 대표들이 와서 축하 서명을 해줍니다. 큰 천인데요.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 때 서명을 해주는 거란 말이죠. 그 서명을 했을 때 여인들이 쭉 서명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는 좌파우파가 다 됐는데 이때가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 손잡고 있을 때라 주월 라이라고 하는 우리가 주월 내라고 하는 이런 인물도 충칭 에 와 있었을 때거든요. 그래서 이 주월 내라는 인물이 다른 분이 와서 대필로 주월 내라는 이른물을 서명을 하고 동필무라고 하는 동피오라고 하는 중국 공산당 에 대표도 서명을 축하해준단 말이죠. 아주 유명한 항엄이라든지 백승이라든지 손과 손커라든지 아주 중국의 대단한 인물들이 이날 참석해서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을 축하해주는 거죠. 이 사진은 시안에서 우리가 흔히 김준력 장주나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광복군으로 양성되었던 분들이 시안에서 제2시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분들에게 OSS라고 하는 미국의 전략첩보국이 있습니다. OSS. 이것이 이제 나중에 CIA가 되는데요. OSS가 중국 전구에도 OSS가 있고 태평양 전구에도 OSS가 있습니다. 이때는 한반도가 중국 전구 소속입니다. 그리고 중국 전구를 관하라는 전략첩보국, OSS 사령관, 도노반 소장과 백범 김구 주석이 만나서 뭘 하는 날이냐 이게 아마 진짜가 본 거니까 우리 제2시대 사령부인 것 같은데 제2시대장은 이범석 장군이 뒤에 보이고 이 청천 총사령관이 있고 어망습생이 있고 여기에 이 백범과 도노반이 이날 뭘 했느냐 하면 지금까지 OSS가 광복군 2시대를 훈련 시켜서 무슨 훈련? 국내에 침투 시켜서 정보를 중국에 있는 연합군에게 보내는 훈련 을 시켰단 말이죠. 그래서 국내로 진입하는 진입부대, 국내 진공작전이라고 하는데 그 진공작전 에 두 나라의 대표가 합의를 한 날입니다. 그리고 침투를 하죠, 보내죠. 그런데 그 비행기가 다시 돌아오면 왜 최후 리허설이었어요. 그리고 그다음 날 출동하려고 했는데 그 날 밤에 일본이 항복한다는 비밀 전문을 해독하게 됩니다. 그래서 국내 진공작전이 스톱되어 버리는 거야죠. 어쨌든 이것은 미국 OSS 사령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추석이 국내 진공작전에 합의했다. 미국의 비행기로 그다음에 미국의 훈련을 통해서 양성된 침투를 부대가 국내로 들어오게 하는 그런 것이 합의된 날 이런 모습입니다. 이 사진은 꽤 조금 오래됐는데요. 어떤 방송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라는 게 있었어요. 그게 보면 그때 촬영을 중국의 고의린 개림이라고 하는 그런 쪽에서도 촬영하고 있는데 실제적인 것은 인도범아 지역에, 미얀마 지역에. 이 인도미얀마 지역의 영국군이 일본군에 맞서 싸우면서 고립되어서 굉장히 어림을 겪을 때 일본어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정보장교를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파견된 광복군에서 파견하는 것이 바로 인면 전국공작대 인면 이라는 인도미얀마 라는 뜻입니다. 인면. 그 영국군의 요청에 따라서 그쪽에 대표자죠. 우리 광복군의 여명이 파견되어 가서 일본군의 포로를 시문하고 일본군의 전문을 회독하고 또 암호를 번역하고 그리고 일본군에게 대적 방송도 하고 이게 진영의 나누에서 그래서 이런 연합군으로서 활동 을 펼쳤다 이말이죠.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카이로회담은 1943년도 11월이니 이제 태평양 전쟁이 일본이 점으로 가고 이제 루즈벨트가 생각해봐도 이 전쟁은 확실히 이기겠다 하고 앞이 내다 보이는 상태죠. 그래서 여기에서 이 태평양 전쟁이 끝나면 팽호 열때는 너희들이 가져가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죠. 그럴 때 장제스가 루즈벨트에게 한국의 독립을 반드시 보장한다고 넣자 이렇게 주문을 하게 됩니다.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이틀 날 또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루즈벨트 생각 속에는 장제스가 한국을 뭘요 그러는가 보다 이런 이야기를 나중에 루즈벨트가 그 아저 사람한테 표현을 했다는 그런 비망높이기도 있지요. 그러니까 장제스가 치료하게 이 전쟁이 끝나면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것을 명문화시키자. 장제스가 왜 그랬을까요. 장제스가 출발하기 전에 5월에 김구 주석 김교식 부주석 조소왕 외모 부장 그다음에 김움봉 군무 부장 이 청장 총사령관 5명이 장제스를 만나서 이번에 카이로 해당에 반드시 한국을 독립시킨다고 명문화 해 주십시오. 그 이야기를 그듭그듭 요청을 합니다. 우리들이 활동해 온 것도 있지 않느냐. 그래서 장제스는 그것에서 루즈벨트와 철치력의 한국 문제를 지배하게 이야기하게 되고 유일하게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해방된 뒤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루치 군정장관이 열강영수회담 의 합의사항을 진행하러 왔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거든요. 독립을 시키려고 왔다. 그러면 그 과정이 필요하지 않느냐. 그것을 이제 얼마 간에 군정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생일 죠. 어쨌든 인도의 내로가 그 당시에 감옥 에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보라 얼마나 한국이 되다는 나라냐 하고 그런 편지를 딸에게 써서 보냈죠. 그 내용이 내로에 편지 옥 중에서 보냈어 신이 묶어서 세계사 편력 이라고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세계사 편력으로 나와 있는데 그 딸이 바로 인디라 간비 죠. 그 내로가 한국인의 항잼 즉을 보라. 국제일강들이 인정하는 모습을 그렇게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우리들의 활동의 결과죠. 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5년 그러니까 대한민국 27년에 귀국을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8월 15일 날 해방 이 되었지만 이분들이 금방 들어오 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임시정부라고 하는 위상을 갖고 귀국을 해서 이분들이 선언 을 하거든요. 8월 15일 이후에 직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정부를 직접 국민들에게 갖다 바친다. 맞떨어서 봉환을 한다. 우리가 처음에 뭐라 그랬냐. 문제가 주권을 포기하는 순간 그 주권은 국민이 가지지 조선청독 이 가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국민이 앞지에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권을 되찾아서 국민 손에 쥐어드리는 것이야말로 독립운동가들이 할 일이다. 이런 스토리의 이야기는 1917년 대동당결 선언에서 이미 나왔거든요. 그리고 임시정부는 그대로 역사를 살아왔고요. 그러니 지금 우리가 국내로 들어가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우리 임시정부를 받떨어 돌려드리자 하고 선언을 하는 거죠. 하지만 이것이 끝내 군정에서는 인정을 하지는 않죠. 그래서 이것이 자꾸만 늦어지고 늦어지고. 그래서 결국은 개인자격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동의하고서야 돌아왔죠. 그리고 귀국하는 날도 실제로 여인들이 들어오는 줄은 아무도 몰랐어요. 그런데 돌아오기 전에도 얼른 돌아오셔서서 돌아오어서서 하는 그래도 많이 발표해요 우리 국민 대표들이. 그렇게 돌아왔는데 이분들을 어떻게 반기느냐 하면 환영이라고 하는 큰 글자가 있지요. 그리고 여기 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분들이 지금 서울운동장 그러니까 요즘은 동대문플라자라고 하나요.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선 환영식을 합니다. 돌아온 데 대하여 환영식을 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환영이 아니라 개선했다는 거예요. 개선했다는 것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미군정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여인들을 민간자격으로 돌아오게 했지만 우리 국민들은 독립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다고 환영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개선문처럼 이렇게 그 당시 행사 순서에 보면 개선문도 만들었다는 게 이거죠. 그래서 시가 행진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대한민국의 우리들의 역사가 임시정부의 역사가 민간인 자격으로 돌아와서 끝났을까 그러지는 않습니다. 이게 48년도 지금 우리 대한민국 정부 임시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가 만든 재헌은 법의 전문입니다. 이 전문은 그 당시 이승만 의장이 꼭히 너라고 강조했던 겁니다. 이게 안 들어가면 열광 때문에 우리가 독립한 것밖에 안 돼. 우리가 독립운동으로 독립했다는 것을 밝혀야 돼 해서 나온 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김희 3일 독립운동으로 대한민국 을 권리 파여 세워서 세계에 선포한 독립정신을 개성하여 이제 민주 독립국가를 재근한다 재근한다. 1919년에 대한민국을 세웠어요. 그리고 이것을 48년에 재근한다 이렇게 명문화합니다. 그리고 식을 하는데 근국이란 말이 없죠. 여기 보시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입니다. 결코 대한민국 근국 축하식이 아니에요.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이름은 그대로 가져오고 이제는 임시 정부가 아닌 정부를 수립한다는 뜻이죠. 그리고 나라에서 발행하는 최고급의 기관지가 관보인데 그 관보를 보면 대한민국 30년 9월 1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대한민국 30년 9월 1일 이 이야기는 1910보년이 대한민국 1년이다 이런 뜻입니다. 이렇게 개성을 하는 거죠. 국가의 수반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에 대통령제를 시작했잖아요. 그러다가 국무령제 주석제로 바뀌었지만 임시 대통령이란 말 그대로 갖고 옵니다. 또 국기 태극기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그 태극기를 여글로 통일합니다 하고서 정한 것이 임시정부 충칭 시절이에요. 그것을 49년도에 아주 조그만 선질해서 그대로 개성을 합니다. 또 41년도에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를 부르게 되는 것이죠. 그것을 그대로 받아 옵니다. 수반 국기 국가 아까 이야기했대 국호 연어 모두 그대로 받아 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우리가 두 개를 묶어놓으니까 대한민국 과 임시정부가 똑같은 것인 것처럼 또 상의임정 상의임정 하니까 정부 맺는 것처럼 보았지만 그건 아니죠.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3일 독립 선언에서 우리가 독립국임을 세계에 선포했고 독립국을 선포했으면 이름이 세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대한무제국으로 망했는데 우리가 새로 세올라 라는 미니 주권 을 가지는 대한민국입니다라고 만들고 다만 국토를 뺏긴 상태에서는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이 이것을 운영하지만 이걸 중심으로 독립운동 을 펼쳐나가지만 국토를 회복하면 국회가 된다. 정부가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가 국회가 운영 하는 최저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리를 해보자면 우리가 독립운동 으로 근대국가를 세운 나라다. 독립운동을 펼쳐나가면서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군주국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국가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독립운동으로 근대국가를 건설했다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럼 전 세계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면서 근대국가를 만들어냈 나라 그것도 이미 국가를 선언하고 정부와 의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끌고 간 나라 그렇게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간에는 한국이 근대가 된 것이 심민지통치덕분이었다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심지어 세마루 운동을 근대화 운동이라고 표현하는 것 저는 찬성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근대화 운동이라는 말은 근대가 됐다는 말입니까? 안됐다는 말입니까? 근대화 운동이라는 말은 아직 근대가 안됐다. 그러면 충세란 말입니까? 세마루 운동 일어날 때 우리가 충세란 말이에요? 아니잖아요. 그럼 그다지 근대라는 게 뭐냐? 기준을 본 근대라는 기준은 정치적으로 말할 때는 왕조, 군주 사회가 아니라 시민들 시민사회 다시 말해서 국민들이 참전권을 가지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것을 근대라고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이야기를 하죠. 자본주의사회를 근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상적으로는 합리주의, 비판정신, 과학적 비판정신이 있는 합리주의 사회를 말합니다. 그러니 오로지 일본의 심민통치 속에서 우리가 경제적으로 근대화가 되었다 이 이야기만 계속 대푸리하면서 심지어 나아가서 나중에 세마루 운동 처참 근대화 운동이다. 세마루 운동은 산업화 운동이에요. 그래서 이 심민지 근대화 론자들 지금도 일골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이미 독립운동으로 근대국가를 세운 나라다. 그런 세계사에서 보기통은 사례에 속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대한민국 정부가 지금 오늘날의 헌법에서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개성한다고 천명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정부는 대한민국과 임시 정부를 그대로 개성해왔고 그래서 1948년 대한민국 30년에 만들어진 헌법에도 재근한다고 되어 있었고 지금 현재 헌법에도 그 정신을 개성하는 걸로 천명해 놓았습니다. 이것이 이제 국가 역사의 국가사적인 차원에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죠. 한대 돌아보면 우리들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또 대한민국 과 임시 정부를 구분해 놓고 보는 또는 대한민국과 정부 옛날에는 정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울 때 그 사람들을 반국가 사범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국가와 정부를 구별하지 못하던 시대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 잘합니다.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는 것. 그러니까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대한민국을 세워놓고 국토를 되찾는 독립운동을 펼치고 그 독립했을 때는 임시를 떼고 정부가 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헌법으로 그냥 그대로 국가 이름, 연허, 태극기, 국기 그다음에 국가예국가 모든 시스템을 또는 대통령제까지 가져왔죠. 그런데 그 역사를 한 손에 볼 수 있고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막하고 건국론이 뭐니 희한한 이야기가 나와서 딱 보면 대한민국이 그때 만들어졌어. 그때는 임시 정부 시대이고 지금은 정식 정부 시대이구만 그것을 눈으로 보여주려고 하고 싶어요. 그래서 기념관을 진짜 이 역사적인 가치를 여기에 지금 담아내야겠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지 않아서 국립으로 만들어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기념관을 보시게 될 것이고 그 자리에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일행이 언제 어디에서 누가 만들어냈고 또 그것을 오늘날까지 어떻게 개승해왔으며 그런 것이 세계의 남미나 또는 아프리카나 아시아나 수많은 독립운동을 했던 나라들 가운데는 우리가 얼마나 위상을 갖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나라사랑 우리 차례다. 그 독립운동가들의 그 역할들이 그 몫이 결국 이제는 우리가 낫을 차례다 하고 연호를 한번 여러분들께 제시해 봅니다. 서기로만 사용하는 이 연호 저는 올해가 대한민국 103년이라고 관렀 해서 우리 주변 나라들 보면 일본도 그렇고 대만도 그렇고 지금 헤이세이다 민국이나 중한민국 이라 이렇게 쓰는데 우리는 우리 연호를 잃고 서기만 쓰고 있죠. 그래서 올해는 대한민국 103년 2021년입니다. 이때가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